요즘 나의 잠 패턴은 올빼미라 할 수 있다. 새벽 3-4시 쯤 스르륵 잠들어 오전 11시가 넘어갈 때 쯤 느지막히 일어나는 평화로운 삶. 너무나 꿈꾸던 삶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가는 하루가 아쉬워 꾸벅꾸벅 졸면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해 언제 잠이 든 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다. 그러다 아침 알람소리가 들리면 지난밤을 후회하며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만큼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거렸다. 제발 오늘이 휴일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면서. 그렇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찾은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잠들어 알람소리 없이 알아서 눈 뜰때까지 잘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원할 때 잠들고 일어날 수 있는 삶. 지금의 패턴이 건강한 삶이라 할 수는 없으나, 잠을 잘 만큼 자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뼛속 깊이 느끼는 중이다. 특히 언니 출근준비 소리에 잠깐 눈만 떠 이불 속에서 돈 많이 벌어오라고 발로 인사를 건낼 때. 이것만큼 짜릿한 게 없다. 

 이런 올빼미생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으니, 바로 영국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와 시차 차이 8시간. 우리나라에서 한창 활동하는 시간에 잠이 들어야 하는 영국. 사실 지금의 내 잠패턴은 영국여행을 위한 준비였다고 할 수 있었다. 시차적응 따위 필요없는 영국행 비행기 안에서 펼쳐든 컨셉진 잡지 < 당신은 잘 자고 있나요? Vol. 71 >. 그런데 이 잡지를 읽으며 나는 뜨끔했다. 내가 잠을 너무 막 대했구나 싶어서.  


잠을 잘 다는 것. 노력을 들여서라도 그래야 하는 이유는, 재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잘 자고 있나요?

 나는 어디를 가든 잘 자는 편이다. 오죽하면 밤에 잠든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이런게 숙면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구나' 깨달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 역시 잠을 많이 경시했다. 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당장 땡겨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급하면 항상 잠부터 줄였다. 가진 시간이 한정된 상황에서 '잠'은 제일 건드리기 쉬운 존재였다. 잠을 줄이면 공부할 시간을 더 벌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언가 준비할 시간을 더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온 날이면, 그 날이 너무 아까워 잠을 줄이고 충혈된 눈을 부여잡고 내가 보고 싶었던 예능을 보거나 웹툰을 봤다. 이렇게 잠을 땡겨쓰는 날들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잠은 땡겨쓸 수 없는 것이라는 것. 내가 자지 못한 시간은 결국 졸거나 멍을 때리는 등의 방식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 평일에 땡겨쓴 잠만큼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만 자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매번 잠을 땡겨 쓰고는 했다.

 ‌잠을 많이 자면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루 4시간만 자면서 공부해 서울대에 갔다는 책, 하루 4시간만 자며 일을 한다는 기업 회장님들. 나는 하루 4시간 이상을 자기 때문에 이렇게 하찮은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가 싶은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잠을 자며 쉬는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잠을 자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4시간만 자고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하루 8시간은 숙면을 해야 그날 하루를 쾌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탓해야하는 존재가 있다면 8시간 숙면을 취하고도 더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일 뿐. 잠자는 나는 아무 죄가 없다는 것.

‌ 잠은 중요하다. 필요한 숙면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잠을 자야 다음날 활동이 가능한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숙면을 위해 중요한 게 침대라고 한다. 사람을 태어나 그냥 주어진 침대를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나에게 맞는 침대가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돈을 벌면 새 침대도 사야겠다. 역시 돈 쓰는 일을 상상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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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실히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아니다.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이고, 겨우 잠이 든다 해도 꿈을 너무 많이 기억해 온종일 피곤하다. 그런데 어찌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나 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7명은 수면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불면은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불면 사회에 살고 있다.
‌ P.44 < RM 본_잠 못드는 밤에 관하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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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는 말 그대로 인생 게임이다. 게임 속 그들의 삶이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일과 공부를 위해 가장 먼저 줄였던 건 언제나 잠이었으니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아름다운 반면, 자는 시간은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무엇을 위해서? 행복한 삶을 만드는 건 승진과 이사 같은 목표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주말의 피크닉, 내일의 나를 만들어주는 편안한 잠자리. 이런 소소한 시간들이 우리의 삶을 채울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거 아닐까?
‌P. 49 < EA_The Sims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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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잠을 경시한 풍조가 있어요. 잠을 많이 잔다고 하면 좋게 보지 않잖아요. 그게 수면 부족이나 불면증을 겪는 가장 큰 이유죠. 살을 뺼 때는 헬스장에 가고, 음식도 조절하고 비싼 돈을 들여서 관리를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잠은 당연하게 자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
인간의 몸은 유기적인 기계라고 볼 수 있어요. 잠을 충분히 안 자면 기계를 계속 돌리는 거니 당연히 고장 나요. 쉽게 얘기하면 빨리 죽는 거죠. 잠을 안 자고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심장이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하루에 24시간 틀어놓은 컴퓨터랑 6시간 쓰는 컴퓨터랑 수명이 다른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 빨리 죽고, 평소에 능력을 전부 발휘할 수 없게 돼요.
(...)
잠을 잘 다는 것. 노력을 들여서라도 그래야 하는 이유는, 재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루를 뜨겁게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잠들지 않으면 우리는 이리저리 발길에 채이는 연탄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 쉬어 가야 한다.

"사람은 잠 이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어릴 때 아프면 엄마가 약 먹고 자라고 말하잖아요. 어딜 다치면 약 바르고 자고요. 자는 동안 회복되니까요. 미국 스포츠 협회에서는 잠을 합법적인 스테로이드라고 표현해요. 그만큼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은 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신경 써요. 일반인들한테도 중요한데, 보통 사람은 그걸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죠."
P.52-62 < 낮잠형 인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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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범의 존재는 '잠 은행'의 채무 담당관. '잠 은행'은 밀린 잠을 빌려주는 곳으로 웹툰 '이말련씨리즈'에 등장하는 소재다. 웹툰은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다 깜박 잠이 든 신입 사원 금봉수가 꿈속에서 '잠 은행'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금봉수는 그곳에서 자신이 이틀간 잠을 자지 많아 16시간의 수면이 압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려 잠을 대출받는다. 하지만 늘어가는 업무량에 대출은 점점 늘어만 가고 밀린 잠을 상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수면실로 끌려가 평생 잠들게 된다. 
P.181 < 고등학생 김기수 中 >


이제 가는 하루 너무 아쉬워하지말고 붉게 충혈된 눈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