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하겠습니다>를 읽고 난 후
나는 퇴사자다.
중소기업에서 1년 2개월 근무했고, 오늘이 백수된 지 딱 2개월째 되는 날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퇴사를 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크게 보면 비슷하다. 결국 회사와 나의 합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일이 재미있어 새벽3시까지 근무하거나 주말출근을 하는 상황도 괜찮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러지 못했다. 4개월 동안 설사가 계속되는걸 보며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퇴사를 결정했다. 꽤 오래 다닌 것 같았는데 그만두고 보니 회사를 다닌지 고작 1년 2개월이었다.
유행에 휩쓸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 누구보다도 먼저 유행에 따라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길다면 긴 취준생기간을 보냈다. 대기업, 중견기업에 무수히 많은 지원하고 떨어진 후 딱 1년만에 들어가게 된 회사였다. 그래서 기뻤다. 이곳에서 최소 5년은 다니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람일은 예측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퇴사를 하고 나서 24시간의 자유시간을 얻었다. 일단은 조금 쉬면서 병든 몸과 마음부터 낫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창 일해야할 나이에 이렇게 쉬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쉬긴 하지만 생산적으로 쉬어야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학원을 끊었다. 1년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자마자 나는 월, 화, 수, 목, 일요일, 주5일의 패턴으로 매일같이 학원에 나갔다. 친구들이 약속을 잡자고 했지만 학원에 시간을 묶은 나는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퇴사를 하고 3주가 지난 다음에야 겨우 한 친구를 만났다. 회사를 그만두고 뭐하고 있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쉬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사실 넌 쉬고 있는게 아니라고. 사실 친구는 내가 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항상 바빴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학원을 다니고 있는 지금처럼, 나는 알바를 하지 않으면 인턴을 하고 있었고, 인턴을 하지 않으면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바빴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뭐가 잘못된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제까지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보기로 했습니다
오늘부터 일 년 간 휴직하겠습니다
째깍째깍 가던 회사에서의 시간을 잠시 멈추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퇴사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퇴사 이후의 삶이 궁금한 내 눈에 들어온 책 <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 사실 사람은 자신의 진짜 욕망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때 이 느낌을 대변해주는 물건이나 내용을 보게 되면 "맞아! 내가 지금 딱 이런 마음이었어!"라고 외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 >를 보고 내가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
휴직 후 편안하고 안정된 일상에 행복함을 느낄 법도 한데, 나는 긍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했다.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혼자 평일 카페에 앉아 글을 쓸 때, 그리고 한가하게 공원을 거닐 때처럼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시간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자동 반사적으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 뭔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러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P.100
◎◎◎
이제 벚꽃이 피면 진해 군항제도 갈 수 있고, 가을바람 불면 부산 국제 영화제도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시간이 없어 못한다는 변명 따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뭐든지 할 수 있다면, 무엇이 하고 싶은데?' 라는 질문이 백지 위에 떠오른다. P.89
◎◎◎
시간의 유무와 무관하게 내 안의 우선 순위는 변하지 않는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금 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많더라도 아마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뭔가를 정말 하고 싶은데 그걸 지금 하고 있지 않다면, 정말 하고 싶은게 맞는지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P.114
◎◎◎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회사원으로서 느끼는 분노, 우울, 권태 등의 감정을 아예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프로페셔널한 일꾼이 될 수 있을까?
◎◎◎
남에게 부정성을 강하게 드러낼수록 노련하고 프로페셔널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이상한 사회였다. 나는 그곳에서 매주, 매월, 매년 경력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부정성 위에 부정성을 쌓아 왔다. 그건 전적으로 내 무지 탓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남들이 다 담배를 피우니 나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했다. P.159
◎◎◎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은 독립성을 지킬 수 없었던 순간들이다. (중략) 상사들의 의견에 따라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대답만 하면 되는 곳. 야근은 당연하고, 갑자기 주말 출근과 해외 출장을 명령받아도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싫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으로서 누가 독립성을 지키며 일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회사 환경에서 이것이 어렵다면, 독립성을 지키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키워야 하는가? 이것이 직장 생활 내내 가장 큰 화두였다. P.198-199
◎◎◎
쉬고 싶어서 퇴사나 휴직을 감행하셨다면 정말로, 그냥 쉬시면 됩니다. 휴식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게임에서도 HP를 충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지금을 회사 생활에서 고군분투하느라 바닥난 HP를 회복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합시다. 쉴 때 잘 쉬어야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습니다. P.272
◎◎◎
돈을 벌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불안해지기 쉽습니다.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님꼐 물려받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차피 평생 돈을 벌어야하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니 돈을 못 번다고 걱정하지 맙시다. P.278
볕 좋은 날 커피 한 잔 마시러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건 아니더라구요
책을 읽고난 후 나는 마음을 먹었다. 이제 진짜 쉬어 보기로 했다. 다음 스템을 위한 진짜 휴식기.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회사는 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한 시간이 줄어든 것 뿐만 아니라 하기 싫었던 일들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하는 시간으로 채우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지금도 나는 학원을 다니고 있다. 대신 횟수를 줄였다. 지금은 매주 토요일만 학원을 가고 그 이외의 시간에 무언가 더 채워넣지 않고 비워두었다. 나는 지금 쉬는 중이다. 누가봐도 쉬는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어느 누구보다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