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까지 패키지 여행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한다. 물론 자유여행 계획을 세울 때면 '차라리 그냥 패키지로 가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자유여행의 장점으로 제일 먼저 꼽히는게 '가격'이다. 발품 판 만큼 저렴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요즘은 패키지여행 상품도 잘 나와 자유여행경비와 패키지여행상품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자유여행은 말 그대로 '자유'라 내가 A-Z를 하나하나 결정내려야 한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것들을 하나씩 찾아보며 선택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 없다. 이동수단부터 세세한 것들을 결정하고 있다보면 '그냥 패키지상품을 구매하고 말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하는 현타를 맞게 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가 패키지 여행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에 대한 자율성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은 모든 것을 결정해주기 때문에 좋지만, 이것이 가장 큰 단점이 된다. 단적인 예로 어떤 곳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더라도 패키지 여행에서는 예외없이 ㅇㅇ시까지 도착지로 집결해야 한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자유여행은 패키지여행보다 무수히 많은 단점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다닐 때, 내 시간을 유동적으로 쓰며 움직일 때 자유여행의 장점은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내 선택으로만 만들어진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여행을 즐기는 것. 이것이 내가 아직까지 패키지여행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영화는 보통 패키지여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시선에 따라 진행된다. 영화를 보며 감독이 써내려간 스토리를 따라갈 뿐 결말은 물론 작은 흐름조차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영화계에 자유여행 같은 작품이 등장했다.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특이점 작품인 <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 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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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인터렉티브 콘텐츠. 시청자의 실시간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바뀌는 콘텐츠를 말한다.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고? 

 이 작품을 보기 전, 나는 다짐했었다. 몇 시간이 걸리든 여기에서 만들어놓은 모든 결말을 다 보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큰 다짐을 한 후 <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선택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답정너'처럼 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그 답을 하면 된다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머리를 내려치는 선택지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선택지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머리를 내려쳐야 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머리를 내려치는 선택지를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긍정적이었다. 그래. 결말이라도 좋은 걸 찾아보자. 왜냐하면 내 클릭으로 만들어낸 스토리의 결말은 전부 스테판이 개발한 게임이 망하고 감옥에 가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스테판이 낸 게임은 성공하지 못했고 계속 감옥에 갔다. 그때 알게 되었다. 아, 선택을 한다고 해서 결말까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결국 다른 영화들처럼 이 작품 역시 감독이 만들어 낸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구나.   

김영하 작가님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책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런 게 인생일까. K는 생각한다. 어차피 패는 처음에 정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패는 아마도 세끗쯤 되는 별볼일 없는 것이었으리라. 세끗이 광땡을 이길 가능성은 애당초 없다. 억세게 운이 좋아서 적당히 좋은 패를 가진 자들이 허세에 놀라 죽어주거나 아니면 두끗이나 한끗짜리만 있는 판에 끼게 되거나. 그 둘 중의 하나 뿐이다. 그래봐야 그가 긁을 수 있는 판돈이란 푼돈에 불과하다. 어서어서 판이 끝나고 새로운 패를 받는 길. 그 길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中 - 


 그렇다면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해서 개척해나가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 힘들게 고민하며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위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내용의 마무리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세끗이라도 좋다. 승부가 결판나는 순간까지 나는 즐길 것이다.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中 -  


 만약 모든 게 결정되어 있던 것이라도 뭐 어떤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라고 믿으며 내가 재미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결국 정해진 결말로 치닫던 <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해피엔딩 결말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게 조금 슬프긴 했지만 말이다.